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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스토리

설립자 스토리

성산 이영식 목사

한 사람의 사랑이 한 시대의 교육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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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라. 빛을 전하라.
자유를 가르치라.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그리고 사람을 살린 목회자,
성산 이영식 목사

Part 1. 사랑

신앙의 실천,
차별 없는 헌신
가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신념

이영식 목사는 1894년 경남 진주 출생으로,
어린 시절 가난과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도 신학의 길을 걷기로 뜻을 세웠습니다.
대구 계성학교 재학 중 학비를 위해 공장 일과 청소일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신앙의 실천으로서의 사랑

일본 유학 중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를 만나게 되고, 빈민촌에서 헌신하는 신앙의 모습에 영향받아 귀국 후 대구 서문교회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섬기는 목회를 실천했습니다.
그는 나환자 공동체 애락원에도 헌신하며 차별 없는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Part 2. 빛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독립의 의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독립선언서의 서두 문장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독립선언서의 서두 문장
1919년 3·1운동의 선봉

계성학교 졸업 무렵 3·1운동에 참여해, 학생 대표로
대구 3·8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지역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체포를 피해 다시 만세시위를 이어가며
시민들과 함께 독립을 외쳤습니다. 이후 비밀결사
‘혜성단’에서 자금 모금과
철시 운동을 이끌고
『동정표시경고문』을 배포해 항일 의지를 확산시켰습니다.

항일 정신에서 사회교육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그는 만세운동과 항일 활동으로
6개월과 1년 6월형을
선고받아 두 차례
옥고를 치렀습니다. 옥중 구타로 오른쪽 청력을
거의 잃은 그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명을 품었고, 1946년 대구맹아학원을 설립하며
특수교육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의 교육은
소외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길이 되었습니다.

역사를 밝힌 헌신의 빛

1968년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은 그는
노년에도
전쟁 희생 한국인 유해 5천여 구 봉환을 주도하고,
안중근 의사 동상 건립 모금과
괌 현지 추념 사업에 힘썼습니다.
그의 삶은 민족의 자주와 인간 존엄을 밝히는
‘빛’의 연장이었습니다.

Part 3. 자유

배움으로 세운 희망,
교육으로 이룬 해방
광복 이후, 교육으로 민족을 일으키다

해방 후 “남이 하지 않은 일, 거들떠보지 않은 일을 하라”는 신념 아래
장애 아동 교육과 특수교사 양성에 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1956년, 훗날 대구대학교로 이어지는 한국이공학원을 설립하여
교육을 통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자유를 실천하였습니다.

Outro. 희망

한 사람의 뜻이 꺼지지 않도록,
희망이 되어준 이름
선교사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
(Archibald Gray Fletcher)

이영식 목사는 애락원 원장이었던 미국인 의료 선교사 아처볼드 그레이 플레처(Archibald Gray Fletcher) 박사를 찾아 나환자를 위한 봉사 참여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7년간 한센인들과 함께하며 돌봄을 실천했습니다.

선교사 부해리
(Henry Munro Bruen)

1913년 3월, 이영식 목사는 가난으로 대구 계성학교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세례를 준 선교사 부해리(Henry Munro Bruen) 목사의 보증을 통해 19세의 나이로 계성학교 근로 장학생으로 추가 선발되었습니다.

선교사 아담스(James E. Adams)

소망이던 장애인을 위한 학교, ‘대구맹아학교’는 개교했지만 설립 비용이 없어 정식 학교 인가조차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미국 선교사 아담스(James E. Adams) 목사가 빛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는 사택을 임시 교사로 내어주며 학교가 교육의 터전을 이어갈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설립자 이영식 목사

세상을 향해 말하다

나라를
구하고 싶다.

이영식 목사는 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빛을,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게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라가 해야 할 특수교육자 양성을 개인이 나서서 실천한 것이 대구대학교의 태동이 되었습니다.

죽일 수 없는 사람

6·25전쟁, 인민군에서 처형을 앞둔 순간에도, 소외된 자를 향한 봉사의 뜻을 당부했고, 헌신에 감동한 인민군은 끝내 그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모자라는 부분을
사랑으로 채워준다면

타인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울 때 세상은 더 조화롭고 살기 좋아진다며 사랑의 정신을 전했습니다.

  • 나라를 구하고 싶다.

    이영식 목사는 말하지못하는 이들에게 사랑을,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빛을,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는 자유를 주었습니다.

  • 그게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 죽일 수 없는 사람
  • 모자라는 부분을 사랑으로 채워준다면